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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둥둥 뜬 책상 상판… 공사장 줄쟁이의 飛上을 말하다

 

-조선일보 제28128호 2011년 6월 6일 월요일 A19면 기사

 

 

 

 

공사판에서 ‘줄을 타는’ 젊은 사내가 하나 있었다. 두께 18mm의 밧줄로 이어진, 그네처럼 생긴 장비에 달랑 매달려 30~40층 고층 건물의 창을 닦고 외벽을 고쳤다. 바깥사람들은 로프공으로, 공사장 인부끼리는 ‘줄쟁이’라 부르는 일이었다. 젊은이는 한 때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군대 복무 중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제대하자마자 줄을 잡게 됐다. 그 때 나이 스물 셋.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고 공사장에서의 삶은 어느새 30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랬던 사내가 어느 날 전혀 다른 인생의 줄을 잡게 된다. 요즘 그는 하루 종일 미세한 먼지가 폴폴 날리는 작업실에 앉아 나무를 매만진다.

 

 

 

 

 


가구 디자이너 김영찬(39)씨. 그는 공사판 로프공 출신 디자이너다.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예술의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공사 현장에서만 12년을 보냈다. 가구 디자이너의 길을 걸은 지 이제 5년째이지만 굴곡 많은 자신의 인생을 담은 듯 한 그의 작품은 컬렉터들에게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동 갤러리 ‘스페이스 함’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어느 순간 보니 벽만 보고 살고 있더군요. 머리도 굳어가고 마음도 닫히고 있었지요.” 3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공사판의 일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회의가 들었다.”며 “벽만 보는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김씨가 공사장 일을 그만둔 계기는 2007년 호형호제하던 동료의 죽음이었다. 40대 동료가 한 경찰서 건물에서 외벽 작업을 하다가 그만 줄을 놓쳐 세상을 떠났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공포가 눈앞의 현실이 됐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사고 며칠 전에 ‘형님’이 집을 장만했다고 자장면을 시켜 집들이 했었지요. 바로 며칠 뒤에 눈을 감다니…. 형님을 떠나보내고 도저히 줄을 다시 잡을 순 없었어요. 그 길로 공사판을 접었지요.”
그 때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가구였다. 김씨는 사고가 있기 몇 해전부터 현장 일이 뜸한 겨울철에 취미 삼아 DIY(Do It Yourself·사용자 스스로 생활 가구를 만드는 것) 공방에 다녔다. 집안의 반대를 뚫고 자신과 결혼한 부인을 위해 상판이 큰 책상을 하나 만들 요량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김씨의 부인은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지금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가구를 만들면서 김씨는 여태껏 몰랐던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 “나무를 만지는데 직감이 왔어요. ‘아, 내 일이구나’싶은 느낌이었지요.” 아내의 어깨너머로 슬쩍 맛 본 ‘창작의 기쁨’ 또한 그를 충동질했다.

‘형님’의 사고를 계기로 가구를 본격적으로 만들게 됐다. 공방이란 공방은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고 책을 뒤졌지만 결론은 만들면서 배우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연습작으로 60~70여개의 탁자를 만들었다. 일부는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선물로 줬다. 3년 전 일산에 개인 작업장을 내면서 정식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작업은 100% 아날로그로 진행된다. 컴퓨터 작업을 좀 배워봤지만 손이 편했다. 종이에 연필로 수백 장의 스케치를 한 뒤 대강의 형태를 잡는다. 담배 두 갑과 커피 10잔을 놓고 뚫어져라 나무를 바라보며 세부 구조를 구상한다. 그는 “컴퓨터로 디자인하면 비례감은 보이지만 질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화면 속 가상의 가구와 실제의 가구가 너무 달라 컴퓨터 작업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작품은 그의 인생을 닮아 거칠면서도 경쾌하다. 상판과 다리를 바로 붙이지 않고 작은 나무를 끼워 공간을 두는 것이 김씨 작품의 형태적 특징이다. 테이블도 그렇고, 의자도 좌판과 다리 사이가 조금씩 떠 있다. 아프리카산 웬지(wenge)나무로 만든 가로 2.5m의 장식장도 위판과 아래 장이 띄워져 있다. 그래서 가구의 상부와 하부에 고루 시선이 간다. 그는 “나무는 육중한 소재”라며 “너무 무거워 보이지 않고 날아가는 듯한 경쾌함을 보여주려고 구조와 구조 사이를 띄운다”고 했다. 가구 자체가 비상(飛上)하는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작품의 결이 일관되지 않고 편차가 좀 있다. 하지만 길고 험난한 길을 돌아와 이제야 마주한 천직에 대한 소명감은 크다. 그는 “누군가 내 가구를 기다린다면 평생 대패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 김미리 기자

사진 이덕훈 기자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5/2011060501022.html